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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무량사, 만수무량(萬壽無量) 천년고찰을 만나다
부여 무량사, 만수무량(萬壽無量) 천년고찰을 만나다
  • 강남용 기자
  • 승인 2023.01.27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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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지고 묻히니 또다시 피어난 천년도량

[충청게릴라뉴스=강남용 기자]  겨울 안개비가 짙게 내려앉는 토요일 오전을 지나는 산사는 고요하면서도 온화함이 가득하게 무량마을을 감싸안은 듯 곁에서 흐르는 청아한 계곡물 소리와 함께 거뭇거뭇 나이테를 두르고 천년의 세월을 지나오고 있었다. 

만수무량(萬壽無量), 헤아릴 수 없다는 의미의 무량과 만년을 누린다는 만수산의 이름을 조화롭게 합성한 이름이 품격으로 다가오는 부여 무량사는 충남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203(만수리 116번지)에 575m의 만수산을 두고 보령시 미산면과 부여군 외산면 경계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은 통일신라 문성왕 때 창건된 천년고찰로 무량사 역시 역사의 숱한 국난을 비켜가지 못하고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가 수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쳤으나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서 신라 말기의 고승 무염이 일시 머물렀던 곳으로 매월당 김시습이 이 절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입적하였고, 조선 중기의 고승 진묵이 아미타불을 점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시설로는 극락전을 비롯하여 산신각과 요사채 등이 있으며 극락전에는 불좌상 아미타여래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석등과 오층석탑, 천왕문 오른쪽으로 당간지주, 김시습의 부도 등이 있다. 

무량마을을 지나자 금방이라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듯 가까이 계곡물 소리를 담고 곧 '만수산무량사'라는 멋스러운 일주문을 만날 수 있다. 십여미터를 더 나아가니 좌측으로 새로이 조성된 극락교와 마주친다. '나무아무타불 극락교'라 이름을 붙일까? 극락교 아래로 겨울이 지나가는 물소리가 이따금씩 들리는 산새소리와 함께 카메라에 잡힌다. 극락교에서 완만한 산길을 오르다보면 좌측으로 둥그렇고 조봇하게 들어앉은 매월당김시습지묘, 봄날이 찾아와 잠시라도 눌러앉아 돗자리를 펴면 역사의 풍운아와도 같은 선인이 들려주는 지나한 이야기가 귀를 쟁쟁하게 닳쿠기라도 할 것 같다.

곧이어 천왕문에 다다르니 우측으로 가깝게 어느 시절 한 때 번성했던 지난날의 모습이 세월의 무상함에 견디지 못하고 얼룩진 채 당간지주가 우뚝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부터는 몸짓을 가다듬고 경건한 마음새를 가져야 하는 사찰임을 알렸던 길다란 깃대봉의 흔적이다. 

천왕문을 조용히 지나면 어느 찬란했던 궁성을 만날 것만 같이 일직선으로 쭉 뻗은 사찰의 마당에 들어서고 금방이라도 눈에 보일듯 말 듯 미륵전 앞으로 천년의 기나긴 세월을 헤지도록 지키며 멋스럽게 자라오른 노송을 삿갓삼은 석등에 이어 오층석탑과 마주한다.  모두가 국가지정 보물급 문화재이다. 

2층의 외관을 갖추었으면서도 층을 구분하지 않은 통층구조의 극락전, 불룩한 배흘림 기둥의 구조를 가진 독특함, 한 땀 한 땀 베어진 목조각품 높이 날아올라 다가가보았다.  그 오랜 세월 변색을 거듭하였으면서도 큰 상처없이 천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성과도 같은 질곡의 고결한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이제 안개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나타났다.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심술을 부리듯 자리를 내어주지 않던 창공에서 내려다보는 사찰은 뿌옇한 안개에 덮혀있었다. 20여분의 촬영을 마치고 땅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촬영기기는 온통 빗방울을 뒤집어 쓴 듯 물투성이가 되었다. 경내는 말 그대로 몽환의 색을 뿌려놓은듯 파스텔톤 수채화를 닮은 모습이다. 햇살이 이따금 나타나며 바람의 방향도 바뀌었다. 극락전을 우측으로 돌아 이어진 길 위를 얊게 나니 실개천으로 구분해 놓은 산 밑아래 자리잡은 산신각과 영정각을 마주했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불의로 단정하고, 불사이군의 일념으로 방랑의 일생을 보냈던 인물들, 성담수.원호.이맹전.조려.남효온과 함께 절의를 지켰던 생육신으로 일컬어지는 한 사람, 그 또한 영화를 뒤로하고 전국을 유랑하다 말년에 무량사에 들어와 59세에 입적한 매월당 김시습,  30대에 경주 금오산(지금의 경주 남산)에서 기나긴 작품 활동으로 빚어낸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로 평가받는 금오신화의 주인공 초상화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음이 새삼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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